엘리사의 외모설정 편

엘리사 : 나 히로인 안할거야!

작가 : 연재 시작 한달도 안되서 히로인이 출연 포기 선언?!! 대체 얼마나 막장인거냐!

엘리사 : 실컷 좋아하면 뭐해?! TYPE (삐!) 사에서 만든 게임에서 처럼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온 금발 히로인에게 남자 빼앗기는 역할 밖에 더 돼?! 독자들도 그런 것을 더 바랄 거 아냐!!

작가 : 자자, 진정하고 내 말도 들어봐. 너도 충분히 예쁜 히로인이니까 팬들도 생기고 너랑 케이랑 엮어주길 바라는 분들도 생길거란 말이야.

엘리사 : 아무리 그래도 내가 불리하잖아! 주연급들은 대부분 비쥬얼이 있지만 난 없잖아! 오리지널 히로인이니 만큼 불리하다고! 게다가 뭐야? 본문에는 내 생김새 같은 것은 설명이 없고 달랑 보라색 머리라는 것 밖에 없잖아! 설정도 안해놓은 거지?

작가 : 윽! 그, 그렇지 않아! 그 정도야 다 해놨다고!

엘리사 : 정말?

작가 : 물론이지! 자, 우선 찰랑거리며 허리까지 닿는 보라색의 긴 생머리. 역시 여자는 긴 생머리지!

엘리사 : 음....저건 본문에도 있잖아.

작가 : 아, 아직 많이 있어! 기다려봐. 그 다음 아름다운 얼굴, 본문에도 있듯이 네 휘하의 국원들은 네 명령이라면 지옥까지 갔다오겠다고 할 정도로 미인이라는 설정이라고.

엘리사 : 조, 좋아. 계속해봐.

작가 : 그리고 지적인 이미지를 위한 안경과 약간 차가운 듯한 인상을 가지고 있다.

엘리사 : 안경이라면 모를까 약간 차가운 듯한 인상이라는 설정은 왜 넣은 건데?

작가 : 훗! 뭘 모르시는군. 쿨데레라는 말 하나? 다른 사람에게는 쿨하지만 케이한테는 지금 약간 데레데레 상태라는 거지. 이게 모에의 하나다!

엘리사 : 모에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좋은 것 같으니 넘어가.

작가 : 키는 178센티로 모델 같은 키라는 설정으로...

엘리사 : 뭐야!!!? 여자 키가 178센티면 완전 멀대잖아!!

작가 : 케이의 키가 182센티니까 별 상관없지 않아?

엘리사 : 그래도 정도가 있지! 너무 커!

작가 : 그럼 173센티 정도로 해줄까?

엘리사 : 좋아, 그 정도라면.

작가 : 그리고 들어갈데 들어가고 나올데는 나온 B90 W58 H88 남자들이라면 환장하는 육감적인 스타일의 몸매로..

엘리사 : 뭐야! 그건! 가슴이 무슨 수박덩어리야?! 엉덩이는 왜 또 그렇게 큰 건데!

작가 : 기다려봐! 케이는 가슴 큰 여자를 좋아한다고. 게다가 전직 무장국원이라 운동으로 단련된 몸이라서 군살 하나 없는데다가 천성적으로 피부가 탱탱해서 20대 후반이지만 10대 후반과 같은 탱탱함을 유지하고 있다는 설정이라고.

엘리사 : 20대 후반이라는 말이 신경쓰이지만 넘어가줄게. 그리고 W는 57로 해줘.

작가 : 아, 알았어. B90 W57 H88 만족하지? (하여간 여자들이란..)

엘리사 : 뭐라고?

작가 : 아, 아무 것도 아닙니다! 자 그럼 계속해서 능력치를 따지면 마력량은 A+급, 종합 마도사 랭크 A+지만 전선보다는 사무쪽과 정보전에서 능력이 뛰어나고 본문에서 케이가 말한대로 너 만큼 유능한 인재를 본 적이 없다고 했으니 어느 정도인지는 알겠지?

엘리사 : 뭐, 확실히 전선에서 뛰는 것보다는 그쪽이 더 적성에 맞는 것 같기도 해.

작가 : 그리고 현모양처이기도 하다. 좋아하는 남자의 빨래도 대신 해준다는 설정이야.

엘리사 : 하긴 케이는 빨래를 쌓아두는 타입이니까, 옷도 구겨진 것을 그대로 입고 다니니 내가 다리미로 다려줄 때가 많지. 정작 케이는 누가 자기 빨래를 해주는지도 몰라. 얼마 전에는 자기 방에 빳빳하게 다려놓은 옷을 보고는 구두방의 요정이 해놓고 갔나라고 말하더라. (하아~~)

작가 : 둔감하구만. 그럼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이다!

엘리사 : 가장 중요한 거?

작가 : 1만명 중 하나 있을까 말까한 명X라는 설정으로 한 번 빠지면 절대 벗어나기 힘든...

엘리사 : 꺄아아아악! 이 변태작가야!!! 그런 설정을 왜 넣는 건데!!!!!!!!!!!!!!!!

퍽! 퍽! 퍽! 퍽! 퍽! 퍽! 퍽! 퍽! 퍽! 퍽! 퍽! 퍽! 퍽! 퍽!

작가 : 쿨럭! 역시 전직 무장국원.... 한 순간 요단강을 건널 뻔 했다..... 그, 그럼 그 설정은 뺄게.

엘리사 : 잠깐!

작가 : 응?

엘리사 : 어, 없는 것 보다는 나은 것 같으니 그냥 놔둬.

작가 : (그럼 왜 때린 건데!!!!) 어? 케이다. 어이~ 케이, 잠시 이쪽으로 좀 와봐.

엘리사 : 에!?

케이 : 담배 피러 가던 중인데 왜 불러?

작가 : 여기 히로인의 외모 설정을 적어논 건데, 한 번 보고 평가 좀 해봐.

엘리사 : (그걸 왜 케이한테 주는 거야?!)

작가 : (조금 기다려봐.)

천천히 살펴보는 케이.

케이 : 와~ 완전히 내 스타일인데! 특히 아름다운 외모에 이 정도 몸매라니. 게다가 현모양처 타입이면서 쿨데레라. 완벽하네. 딱 내가 좋아하는 타입이야.

엘리사 : 그, 그래?(발그레)

케이 : 그런데 누구 설정인거야?

엘리사 : ...........(둔한 것도 정도가 있지!!!)

작가 : (니 앞에 있는 사람도 못알아보냐?!)

케이 : 하지만 이런 여자가 나한테 관심이 있을리 없지. 역시 나한테는 담배가 최고라니까~
난 담배 피러간다.

엘리사 : ...............................................................................

작가 : ................................................................................

콱!

작가 : 헉! 저기... 엘리사양? 왜 제 머리를 잡으시나요? 저 지금 머리가 부서질 듯 아프거든요?

엘리사 : 당장 케이, 금연시켜.

작가 : 그, 그건 내 힘으로 어찌 할 수가....

엘리사 : 작가잖아! 작가가 못하면 누가 해!! 아니 애당초 왜 골초라는 설정을 잡은 거야!?

작가 : 그, 그건 개성을 위해...

엘리사 : 내 적은 다른 그 누구도 아니었어! 내 진정한 적은 바로 담배였던 거야! 아니! 그 전에 그가 골초라는 설정을 집어넣은 작가, 너도 내 적이었던 거야!

작가 : 아니! 왜 날 걸고 넘어져!

엘리사 : 시끄러워! 죽어버려!!!

작가 : 꽥!!!!!!!!!


-끝-

by 라돌이 | 2009/09/01 12:05 | ㄴ단편 | 트랙백 | 덧글(2)

[나노하X오리지널] 어느 국원의 Dangerous한 라이프 스토리 4화



나의 말에 깜짝 놀란 집무관님은 도저히 믿겨지지 않는 듯한 얼굴이다. 그렇겠지. 나도 지금 이 상황이 실감이 나지 않으니까. 하지만 어쩌겠는가. 뒤에서 쫒아오는 저 놈들의 눈은 이미 우리를 죽이겠다는 살기가 넘쳐나는데.

집무관님의 손을 잡고 재빨리 엘리베이터를 탄 나는 그제서야 한숨을 돌렸다.

"하아, 하아... 대체 어떻게 된 건지 설명 좀 해주세요. 그들이 정부 사람이 아니라 알템플이라니, 전 도통 이해를 못하겠어요."

집무관님이 이해를 못하는 것도 당연하다. 왜냐하면 내가 그들이 알템플이라고 짐작하는 것은 창피하게도 그 마녀, 엘리사의 능력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기 때문이니까. 집무관님에게 어떻게 설명해야하나?

"그럼 제가 알고 있는 것만 전부 말씀드리죠. 전 이 책을 받을 때까지 이곳에서 테러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집무관님이 말해주어서 알게 된거죠. 전 그때까지만 해도 그저 책만 전달해주면 되는 건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요?"

"하지만 뭔가가 이상했습니다. 저에게 이 임무를 맡긴 엘리사, 그러니까 제 상관도 이 책을 건네준 유노 스크라이어 사서장도 이곳에서의 사정은 모르고 있는 듯 했습니다."

"유노군도?"

서로 알고 있는 사이였던가? 젠장! 잘생기고 유능한 녀석은 발도 넓은 거냐?!

"예, 저는 처음에는 윗대가리들이 제 상관을 경계하기 위해 이 임무에 대한 정보를 차단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세베릭이라는 녀석과 대화하면서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죠. 집무관님은 이곳의 사정을 얼마만큼 알고 계셨나요?"

"테러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 정도만요."

"예, 그정도만 알고 계셨죠. 아까 집무관님은 이쪽 정부에서 시공관리국에 지원 요청을 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고 하셨죠?"

"예. 그런데 그게 무슨 상관이죠?"

젠장, 내 입으로 이런 말을 하게 되다니. 정말 쪽팔리지만 이 상황을 설명하려면 이것 밖에 없다.
일이 무사히 끝나고 집무관님이 아무 말도 하면 안될텐데. 그렇지 않으면 그 마녀가 희희낙낙하며 나를 놀릴게 틀림없으니까.

"말하기 창피하고 쪽팔리지만!.... 제 상관의 능력은 정말 뛰어납니다. 그래요!! 솔직히 말하면 정말 뛰어나서 질투가 날 정도 입니다. 제가 이제까지 살면서 그 녀석 만큼 유능한 녀석은 본 적이 없어요. 만약에 387관리 세계의 정부쪽에서 시공관리국에 지원 요청을 했다면, 그것도 2주일이나 지났다면 그 녀석이 모를리 없습니다."

으으..... 내가 말한 거지만 정말 쪽팔려서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다.
엘리사가 나를 비웃는 얼굴이 눈에 훤하구나.

"그런데 그 녀석은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지원 요청 사실 자체가 없었던 일이었기 때문이죠. 그렇다는 것은 세베릭이라는 놈이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정부 사람이라면 우리에게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잖습니까?"

"단지 그것 때문인가요?"

"예."

"엘리사라는 분이 말을 안해줬을 수도 있잖아요."

"아뇨. 그 녀석은 임무에 관한한 부하들을 절대 속이는 짓 따위는 하지 않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엘리사가 없는 것이 천만 다행이다. 있었다면 절대 이런 말 못하지. 그나저나 일을 무사히 마치고나서 어떻게 집무관님의 입을 막을까 고민이다.
내가 고민하고 있을 때 집무관님이 갑자기 나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갑자기 왜 웃는 거지?

"그 엘리사라는 분이 정말 부럽네요."

"예? 뭐가 말입니까?"

"이렇게까지 자신을 신뢰해주는 부하가 있다는 것 말이에요. 누군가가 나를 아무 이유없이 신뢰해주고 따라주는 것 만큼 상관으로서 기쁜 일은 없을테니까요. 정말 그 엘리사라는 분이 부러워요. 케이씨 같은 부하를 둬서요."

쪽팔려서 이 엘리베이터에서 뛰어내리고 싶다. 집무관님은 그 미소가 오히려 내게 독이라는 것을 알고 계시는 걸까?

"정말 소문은 믿을 게 못되는군요. 저 솔직히 이번 임무를 맡았을 때 걱정 많이 했어요. 케이씨에 대한 소문이 그다지 좋지만은 않아서..."

"윽! 그 소문 알고 계셨던 겁니까?"

"같은 임무를 맡은 사람인데 모를리가 없죠. 본국무장대의 문제아, 상관킬러, 부하로 두고 싶지 않은 부하 1위 등등이요."

모르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지만 집무관님에게 직접 들으니 왠지 모르게 서글퍼진다.
이게 다 그때 그 망할 상관 놈 때문이다. 그런 명령만 내리지 않았다면....

"그런데 어째서 그런 짓을 저지른 건가요? 지금 보니 케이씨는 그럴 분이 아니신 것 같은데."

"그건 말하기 조금 그렇네요. 저에게도 그다지 생각하고 싶지 않은 기억이라서."

"아, 죄, 죄송해요."

저렇게까지 미안해하면 오히려 이쪽이 더 무안해진다. 별로 사과 받으려고 한 말은 아니었는데.
대충 집무관님의 성격이 파악되는군. 이런 타입은 나 같은 놈이 상대하기는 조금 꺼려지는 스타일이다. 무슨 말만 하면 사과부터 하니.... 이거 완전 내가 나쁜 놈이잖아!!

"별로 기분 나쁘다는 게 아닙니다. 그러니 사과 하실 필요는 없어요. 그리고..."

"예?"

"제가 했던 얘기... 절대로 그 녀석 귀에 들어가지 않게 해주세요. 만약 그 녀석 귀에 들어갔다가는 전 정말이지 쪽 팔려서 죽어버릴지도 몰라요."

그제서야 집무관님의 얼굴에 다시 미소가 지어졌다. 역시 미녀는 우울한 얼굴보다는 웃는 얼굴이 더 잘 어울린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그런데 상관을 그 녀석이라고 부르다니."

이런, 너무 급한 나머지 실수했다.

"원래 친구 사이입니다. 둘이 있을 때는 말을 트고 지내고 있죠."

흠, 그렇군요라고 말 하는 집무관님,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건지...설마 위쪽에 꼰지르지는 않으시겠지? 시말서는 이제 그만 쓰고 싶은데.

"만약 케이씨의 생각이 틀린 거라면 어떻하죠?"

"그때는...."

"그때는?"

"무조건 잘못했다고 빌어야죠. 뭐 별 수 있나요?"

어이없어하는 집무관님의 표정이 정말 재밌다. 놀리는 보람이 있는 사람이라고 해야 하나?

얘기하다보니 어느새 엘리베이터는 꼭대기층까지 도착했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좌우를 살펴보니 아직 놈들은 도착하지 않은 것 같다.
적이 없는 것을 안 나는 집무관님과 함께 엘리베이터에서 나가려 했는데 그때 집무관님이 나의 팔을 잡더니 내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저, 케이씨를 믿어 볼게요."

나에 대한 강한 신뢰가 집무관님의 눈에 비치는 것 같다. 으, 부담스러워. 하지만 이럴 때 확실히 말해주는 것이 남자다운 거겠지?

"예. 저도 집무관님을 믿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행동하는 것 뿐이다.
집무관님이 방으로 들어간 것을 확인한 나는 재빨리 내 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듀얼 레이지를 착용하여 배틀 모드로 전환시켰다.

[심박수가 평균치를 웃돌고 있습니다. 무슨 일이라도 벌어진 건가요, 마스터?]

"그래. 아무래도 함정에 걸린 것 같다. 빨리 이 곳에서 벗어나야해."

모든 준비를 마치고 방에서 나오니 집무관님의 모습이 아직 보이지 않았다. 다른 쪽의 엘리베이터가 올라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급한 마음에 집무관님의 방문을 두드렸다.

"집무관님! 서두르십시오. 녀석들이 올라오고 있다고요!"

내가 소리치자 방 안쪽에서 당황한 듯한 집무관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 잠시만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아무리 여자를 사귀어본 경험이 없는 나라도 여자가 남자보다 준비하는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다. 기본적으로 속옷도 더 많거든. 그런데 집무관님은 무슨 색의 속옷을 입을까?
엘리사는 퍼플 색을 자주 입는 것 같던데. 본의 아니게 봤다가 정말 죽도록 얻어맞았지만.

'크아악!! 내가 지금 이런 상황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냐!? 집무관님이라고! 나이차가 10년이나 난다고! 아직 미성년자라고!!'

저 너머로 집무관님이 옷을 갈아입고 있다는 사실이 자꾸 쓸데없는 생각을 하게 만들고 있다.
나....무슨 병이라도 있는 건가? 하긴 솔로인생 28년 동안 여자하고는 인연이 없었으니...
내가 정말 진심으로 고뇌하고 있을 때 엘리베이터는 점점 올라오고 있었다.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제길! 집무관님! 아직 멀었습니까?!"

"자, 잠시만요. 이제 다 됐어요."

계단쪽에서도 녀석들이 올라오는 소리가 들리자 나는 다시 한번 방문을 두드리려 했으나 때마침 집무관님이 문을 열고 나왔다. 나와 같이 배리어 쟈켓을 입은 상태로 말이다.

"늦어서 죄송해요."

"사과는 이제 그만 하셔도 됩니다. 자, 이제 우리가 거꾸로 녀석들을 사냥할 때입니다. 준비 되셨나요?"

"예. 전 준비 다 됐어요. 부탁해, 바르디슈."

[YES, I'M READY.]

데스사이즈 같이 생긴 이상하게 생긴 디바이스로군이라고 생각하니 나도 그런 말 할 처지가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듀얼 레이지도 시공관리국에서는 흔한 타입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케이씨의 디바이스는 다시 봐도 흔한 타입이 아니군요."

"집무관님한테 그런 말 듣고 싶지 않거든요! 제가 보기에는 집무관님 디바이스도 만만치 않습니다."

"바, 바르디슈가 어디가 어때서요!?

오! 화냈다. 저 집무관님이 화를 내다니, 별 일일세. 뭐 그만큼 자기 디바이스를 소중하게 아낀다는 말이겠지. 하지만 난 저 디바이스가 마음에 안든다. 왜냐고? 영어로 지껄이니까.

[LET'S GET ALONG, DUAL RAGE.]

[OH, OF COURSE. I.....(움찔)]

내 살기를 감지했는지 듀얼 레이지가 하던 말을 멈추고 내 눈치를 살피고 있는 것 같다.

[바, 바르디슈, 내가 마스터와 같이 있을 때는 미드칠더 공용어로 부탁한다.]

[AH? 음...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가?]

[그저 난 살고 싶을 뿐이다. 부탁한다.]

듀얼 레이지 녀석, 이제야 정신을 조금 차리는 것 같군. 내 앞에서 영어로 말하면 어떻게 되는지 잘 알고 있으니. 저 바르디슈라는 녀석도 나한테 하루만 맡기면 자기 안에 있는 영어로 말하는 기능을 스스로 지우고 싶어질텐데 아쉽구만.

듀얼 레이지와 바르디슈가 인사를 나누는 사이 놈들이 우리가 있는 층으로 올라와 포위하기 시작했다.

"선방필승!"

건틀렛에서 쏟아져 나온 마력의 포탄이 녀석들을 향해 날아가자 녀석들도 당황했는지 뒷걸음 쳤지만 이미 늦었다.

'콰앙!'

"우아악!"

아~ 듣기 좋은 소리로고. 마력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녀석들의 비명소리가 어우러지니 그동안의 스트레스가 싸악 가시는 것 같다.

"케이씨, 이 리조트에는 다른 일반인도 있으니 힘조절을 해주세요."

"예, 예."

잔소리 하는 건 엘리사와 닮았군. 아니 모든 여자들의 공통된 패시브 스킬인가?

"이거 화려하게 해주시는 군요."

연기 너머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세베릭 녀석인가?

"솔직히 놀랐습니다. 완벽하게 속였다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아셨습니까?"

저 말은 자기들이 알템플인가 알땜빵인가 하는 녀석이 맞다는 얘기로군. 역시 내 예상은 틀린 적이 없다니까. 그게 나쁜 쪽으로만 맞다는게 슬프지만.

"집무관님, 우리들이 사과할 일은 없을 것 같은데요."

집무관님은 고개를 끄덕인 후 세베릭에게 물었다.

"어떻게 저희가 이곳에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나요?"

세베릭은 집무관님의 질문에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무능한 정부 녀석들의 정보를 빼내는 일 따위 저희에게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따돌리는 것 또한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고요. 자, 이번에는 제 질문에 답해주시겠습니까?"

이건 내가 대답해줘야 하는 거겠지? 그래서 세베릭과 똑같은 표정으로 답해주었다.

"아까 집무관님과 네녀석의 대화에서 조금 이상한 것을 느꼈거든. 시공관리국은 지원요청을 받은 적이 없는데 네놈의 지원요청을 했다는 말에서 느낌이 팍하고 왔거든."

"그래서 그런 질문을 하셨던 거군요? 이거 한방 먹었습니다. 꽤 감이 좋으신 분이군요. 이런 일에는 조금 단순한 분이 왔어야 이쪽도 편했을텐데 말입니다. 인정해드리죠. 당신은 유능한 분입니다."

"내가 유능한게 아니라 네놈이 무식해서 알아챈거야. 그 정도의 사실도 파악하지 않고 뭐했냐? 듀얼 레이지, 한마디 해줘라."

[YOU ARE FUKING HEAD! 뜻은 아냐? 크크크크!]

그래, 저런 놈 욕 할 때 영어 쓰는 것은 봐주마. 그리고 집무관님이 우리를 보고 한숨을 쉬는 것은 무시하는 게 좋겠지. 나와 듀얼 레이지의 말이 먹혔는지 녀석의 얼굴이 조금 굳어졌다.

"장난은 여기까지 해두겠습니다. 라이도스의 서를 넘겨주실까요?"

"웃기지마! 이거나 먹어!"

세베릭 녀석에게 마력포를 날린 나는 그 녀석의 비명소리를 들을 것을 생각하니 속이 다 시원해졌지만 아쉽게도 그의 앞에서 갑자기 사라져버리는 내 마력포를 보니 되려 내 얼굴이 굳어졌다.

"뭐, 뭐야!?"

"설마! AMF!? 어떻게 단순한 테러리스트들이 AMF를..."

AMF? 설마 그 마력을 무효화 시킨다는 그거? 집무관님의 입에서 나온 AMF라는 단어는 나도 들어본 적이 있다. 몇 년 전부터 차원 각지에서 나타난다는 이상한 기계들이 사용한다는 특수 장비였다. 마도사들한테는 쥐약 같은 존재라고 하던데. 눈으로 보니 왜 그런 얘기가 도는지 이해가 갔다.

"묻겠습니다. 어떻게 그 장비를 손에 넣으셨나요?"

"죄송하지만 말씀드리기 곤란한 질문이로군요."

"그렇다면 강제로 연행해서라도 듣겠습니다."

오~ 놀라움의 연속이다. 저 집무관님의 입에서 설마하니 강제로 연행하겠다는 말을 듣다니. 뭔가 신선하다. 이렇게 되면 나도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잖아.

"근접전으로 상대한다면 AMF도 별 쓸모가 없어요. 세베릭씨, 시공관리국의 이름으로 당신을 각지에서 일으킨 테러 혐의로 체포하겠습니다."

"후후, 설마 저희들이 준비한 것이 겨우 이것 뿐이라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죠?"

"그게 무슨 뜻이죠?"

'철컥! 철컥!'

'저, 저건 설마?'

내가 아는 그것이 맞다면 위험하다. 절대 위험하다고! 제기랄! 저런 물건을 녀석들이 어떻게 가지고 있는거야?!

"집무관님, 섣불리 움직이지 마십시오."

"예? 케이씨 갑자기 무슨?"

정말 욕나오는 상황이다. 저건 어떻게 보면 AMF보다 훨씬 더 위험한 물건이다. 그리고 이 관리 세계에 있어서는 안되는 물건이기도 하다.

"제기랄, 총입니다. 질량병기의 대표적인 녀석이죠. 실제로 보신 적은 이번이 처음이십니까?"

"질량병기라니!"

내 기억이 맞다면 저건 MP5A다. 내가 살던 지구에서 사용되는 총이 어째서 이런 곳에...

"너, 그 총 어디서 났어?"

"호오, 이 물건에 대해 알고 계시는 겁니까?"

"알 수 밖에 없잖아! 내가 살던 곳에서 사용하는 총인데!"

세베릭은 조금 놀란 표정을 지으며 나를 보았다.

"정말 놀랐습니다. 설마하니 당신이 97관리외 세계의 인간이었다니... 이건 정말 놀라운 물건 아닙니까? 마도와는 달리 재능에 구애받는 것도 아니고 주인을 가리지도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파괴력은 놀라울 뿐이죠. 저도 이것을 처음 봤을 때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솔직히 전 AMF따위보다 이 총이라는 물건이 더 마음에 든답니다."

"놀라는 건 그만하고 내 질문에 대답이나 하시지?"

"흠, 아쉽게도 그것 또한 대답해드리기 곤란한 질문이군요."

아무리 배리어 쟈켓이라도 질량병기에 대한 방어력은 기대하기 힘들다. 몇 발정도야 막아주기는 하겠지만 저 총의 발사속도를 생각하면 섣불리 움직였다가는 몸이 벌집이 될 것이다.
집무관님도 총의 위력을 잘 알고 있는지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

"흠, 슬슬 시간이 됐군요."

'시간이 됐다니, 무슨...'

뭐, 뭐지? 갑자기 몸에서 힘이 빠지면서 눈이 자꾸 감기는 것 같다. 옆을 보니 집무관님도 나와 비슷한 상황이다.

"무, 무슨 수작을 부린 거냐?"

"아, 별거 아닙니다. 아까 여러분이 마신 음료수에 약을 조금 탄 것 뿐이죠. 몸에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니니 걱정은 하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냥 한 숨 푹 주무시기만 하면 되니까요."

상황이 너무 안좋다. 눈이 자꾸 감기고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고 있다. 이러다가는 꼼짝 없이 놈들에게 잡힐 것이다. 나는 AMF 때문에 염화를 쓸 수 없어서 집무관님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집무관님, 버틸 수 있겠습니까?'

'예... 하, 하지만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일단 저놈들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가 신호를 하면 있는 힘껏 방으로 뛰어들어가는 겁니다.'

내 말에 집무관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 둘, 셋! 지금입니다!'

나와 집무관님은 재빨리 문을 열어 방 안으로 들어가 문을 잠궜다. 이렇게 조금이나마 시간을 벌어야 한다. 밖에서는 문을 세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이제 어떻게 하죠?"

집무관님의 질문은 오히려 내가 하고 싶다. AMF로 마법도 제대로 쓸 수 없는 상황에 상대는 질량병기까지 들고 있다. 이대로라면 잡히는 것은 시간문제인 셈이다. 그때 창밖이 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점점 무거워지는 몸을 이끌고 커다란 창문을 열어 베란다로 향했다.
베란다 밑으로 파도치는 절벽이 보였다. 여기서 떨어졌다가는 뼈도 못추리겠군. 하지만 AMF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없다.

"집무관님, 이쪽으로 오세요."

집무관님이 내가 있는 베란다로 힘겹게 걸어왔다.

"지금은 어떻게든 AMF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래야 마법을 쓸 수 있을테니까요. 그러니 뛰어내립시다."

"예?! 여, 여기서요?"

"예, 일단 뛰어내리고 AMF의 범위에서 벗어나 바다에 처박히기 전에 비행마법으로 탈출하는 겁니다. 지금 방법은 그것 밖에 없어요."

집무관님도 잠시 고민하더니 나의 생각에 동의했다. 잠시 마음을 가다듬고 뛰어내리려는 찰나
문의 자물쇠 부분이 총알에 박살나더니 녀석들이 들이닥쳤다.

"집무관님, 어서!"

"예, 꺄악!"

순간 집무관님의 몸이 바인드에 묶여버렸다. 마도사까지 있었던 건가?!
잠깐! 바인드가 된다는 것은 AMF가 풀렸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아직 기회는 있다.
나는 재빨리 건틀렛에 마력을 흘려넣어 마도탄을 쏘려고 했다.

'타앙!'

"컥!"

"케, 케이씨!!!"

'타앙! 타앙! 타앙!'

"쿨럭! 쿨럭!"

4발의 탄환이 내 배를 뚫고 내장을 헤집는 듯한 고통이 느껴진다. 쏜 적은 있어도 맞아본 적은 없는데, 정말 아프다. 두 번 다시 느끼고 싶지 않은 고통이다. 몸에 힘이 빠지고 상체가 뒤로 기울어 진다. 내 몸은 그렇게 허물어지듯 베란다의 난간에 걸려 상체부터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
이렇게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허무하게 끝나는 건가?

"케이씨!!!!!!"

떨어지는 내 몸을 붙잡을 듯한 집무관님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린다.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집무관님. 미안해, 엘리사. 나 여기서 끝인가 보다. 제기랄, 이럴 줄 알았으면 담배 한대 펴둘 걸 그랬다.

'풍덩!'

그렇게 내 몸은 바다 속에 처박히고 말았다.
.
.
.
"케이씨! 케이씨!! 으흑! 흑흑흑! 케이씨...."

"그렇게 우실 것 없습니다, 마드모아젤."

페이트는 독기 어린 눈초리로 세베릭을 쳐다보았다.

"당신, 결코 용서하지 않겠어요."

"이런, 완전히 미움을 받아버렸군요. 하지만 걱정마십시오. 당신은 그와 같은 꼴이 되지는 않을 겁니다. 당신은 저희들이 시공관리국과 거래를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테니까요."

"제가 당신들에게 협력할 거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에요. 그리고 겨우 집무관 하나 때문에 시공관리국이 테러리스트와 거래를 할 거라고 생각하나요?"

"일반 집무관이라면 당연히 그렇겠죠. 허나 당신이 차원 항해함대의 제독인 크르노 하라오운의 동생이라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페이트는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어떻게 그런 사실까지 이 자들이 알고 있는 것인지 의문만이 들뿐이었다.

"하라오운가의 명성은 당신이 생각한 것 이상으로 꽤 널리 퍼져있습니다. 시공관리국 내에서도 하라오운가의 영향력은 꽤 큰 편이지요. 하지만 저희로서도 뜻밖이었습니다. 설마하니 당신 같은 거물이 이런 곳에 올 줄은 몰랐거든요. 그래서 계획에 일부 수정이 있었습니다."

"오빠는 절대 당신들과 거래하지 않을 거에요."

"과연 하나뿐인 소중한 동생이 무슨 짓을 당할지도 모르는데 가만히 보고만 있을까요? 끌고가세요. 소중한 인질이니 정중히 대해주도록 하세요. 지금은 말이지요."

케이의 죽음으로 받은 정신적인 충격으로 인해 페이트는 겨우 참고 있던 졸음이 갑자기 쏟아졌고 곧 정신을 잃어버렸다.

'케이씨....'
.
.
.
온 몸이 떨리고 배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욕지기가 나온다. 허나 그 고통이 아직 내가 살아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쿨럭! 쿨럭! 제기랄....."

[아슬아슬했습니다, 마스터.]

총을 맞고 바다에 떨어지기 직전 AMF에서 벗어나자 듀얼 레이지가 방어마법을 펼쳐 내 몸을 감싼 덕분에 몸이 산산조각이 나는 것은 면했다.

[지금 출혈을 간신히 막고 있습니다. 말을 하는 것은 자제해주세요.]

집무관님은 어떻게 됐을까? 그놈들에게 붙잡혔겠지? 아무리 S랭크의 마도사라도 약을 먹은 상태에서 AMF까지 있으니 버틸 수는 없다. 완전히 당한 것이다. 여자하나 지켜주지 못하다니 내 인생에 있어 다시 없을 굴욕이다.

"빌어먹을... 세베릭, 그 놈을 반드시 내 손으로 박살내버리고 말겠어."

[말하지 말라니까요!]

배때기에 총알을 4발이나 먹었으니 죽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라고 해야겠지.
상처에 바닷물이 조금 들어갔는지 엄청나게 쓰리다. 게다가 옷을 입은 상태에서 온 몸이 젖으니 기분까지 찝찝하고. 응? 온 몸이 젖었다고?..... 설마?

"듀얼 레이지."

[뭔가요?]

"담배는 물에 안젖었겠지?"

[......]

빌어먹을! 내 담배가!! 아직 제대로 펴보지도 못한 새거나 다름 없는 거였는데!!

"얌마! 넌 담배 안지키고 뭐했어!"

[총상의 출혈을 막는데만 신경쓰고 있었는데 어떻게 담배까지 신경을 씁니까!?]

"그런 것보다 담배를 먼저 지켰어야지!"

흑흑! 내 담배.... 담배의 원한, 절대로 잊지 않겠다. 으득!

by 라돌이 | 2009/09/01 02:05 | ㄴ장편 | 트랙백 | 덧글(0)

[나노하X오리지널] 어느 국원의 Dangerous한 라이프 스토리 3화

차원 항해함을 타고 한 두시간이 지난 뒤 집무관님과 난 목적지인 387관리 세계에 도착하여 라이도스의 서를 넘기기로 한 사람과 만나기 위해 약속장소로 향했었다. 하지만 가는 도중에 그쪽으로부터 연락이 왔는데 약속장소를 변경하기로 한 것이다.
지금 우리는 원래 약속 장소와는 상당히 먼 거리여서 미안하다며 저쪽에서 보내준 고급 승용차를 타고 이동하고 있는 중이었다.

"갑자기 접선 장소를 바꾸다니. 무슨 사정이라도 있는 걸까요?"

집무관님의 질문에 나는 아무 말도 못했다. 나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류의 접선에서 약속장소를 바꾸는 일은 드문 일이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은 말이다.
다만 그 사정이라는 것을 모르니까 문제지만.

"우리는 이 책을 안전하게 넘겨주기만 하면 됩니다. 그 사정이라는 것은 잘 모르겠지만 우리들이 상관할 바는 아니죠."

"그렇군요. 하지만 좀 이상한 느낌이 드네요."

이상한 느낌이 드는 것은 집무관님 뿐만이 아니다. 나도 아까부터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가령 저 뒤에서 우리 뒤를 아까부터 졸졸 쫒아는 검은색 차 같은거 말이다.
우리가 차를 타고 이동할 때부터 따라 붙더니 지금까지 쫒아오고 있었다. 그렇다면 목적이 있다는 거다. 그 목적이라는게 이 책이라면 조용히 넘어갈 리가 없겠지.

'집무관님은 아직 눈치채지 못한건가?'

뒤에서 따라오는 차에 대해 아직 모르는 건지 집무관님은 라이도스의 서를 양손으로 감싸쥐며
앞을 보고 있었다. 내 지나친 생각이라면 좋겠지만 국원을 하면서 이런 류의 예측은 꼭 빗나가 주질 않았다. 불행의 신은 나를 사랑이라도 하는 걸까? 제발 관두라고 하고 싶다.

그렇게 20분 정도를 차로 이동하니 창밖으로 해변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리조트도 보이고 맑은 햇빛 아래 모래사장에서 선탠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과 바다에서 수영하는 사람도 보이고 있.....

'엥? 해수욕장?'

변경된 접선 장소로 가는데 왠 해수욕장? 의아한 기분에 집무관님을 보니 집무관님도 나와 똑같은지 창밖을 보고 있다.

"저기 접선 장소가 대체 어디인가요? 지금 이 길로 가면 해수욕장으로 가는 것 같은데요."

집무관님의 질문에 운전을 하고 있던 자가 대답했다.

"저 곳이 바로 새 접선 장소입니다. 설마하니 라이도스의 서를 노리는 자들도 저런 휴향지에서 접선을 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에 내린 결정입니다."

집무관님은 어떨떨한 표정을 지었지만 난 마음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그 판단을 한 녀석에게 고마워서 절이라도 해주고 싶다. 뭔가 아는 녀석들이로구만! 그래, 387관리 세계는 전 차원에서도 유명한 관광명소이기도 하다. 이런 곳에 왔으니 관광지 구경이라도 해야할 것 아닌가.
그런데 이 책을 노리는 자들이라니? 이런 미신 따위를 적어논 책을 노리는 자들이 있다는 건가?

"그렇군요. 그쪽에서 내린 판단이 맞다면 다행이지만...."

집무관님도 뭔가를 알고 있는건가? 이거 나만 모르는 뭔가가 있는건가? 궁금한 마음에 집무관님에게 물어보았다.

"이 책을 노리는 자들이라뇨? 겨우 미신 따위를 적어논 책이 뭐가 대단하다고 노린다는 겁니까?"

"예? 설마 케이씨, 아무 것도 모르고 오신 건가요?"

알면 물어볼리가 없잖습니까. 난 그냥 책만 전달해주면 되는 건지 알았다고. 집무관님은 아무 것도 모르는 나에게 차근차근 설명해주었다.

"얼마 전에 이 387관리 세계의 각 지역에서 국가 관리 하에 있는 국립 박물관들에서 테러가 일어났어요. 테러를 일으킨 자들은 자신들을 '알템플'이라고 말하며 차원 관리국과의 외교를 단절하고 원시 세계로의 회귀를 제창하는 과격 테러리스트 단체였죠."

"거참, 요즘 세상에 보기 드문 이상한 녀석들이로군요, 원시 세계로의 회귀라니. 그런데 박물관들만 골라서 테러를 일으킨 건가요? 무슨 목적으로?"

"그 자들의 어째서 박물관만을 목적으로 테러를 일으켰는지는 아직까지 불명이에요. 다만 그 박물관에서 보관 중이던 몇몇 유물들이 그들에 의해서 도난당했다는 거죠. 도난 당한 유물은 대부분 고서나 지금은 생존하고 있지 않은 고대종들의 화석이에요."

박물관만을 골라서 터는 놈들이라. 확실히 고대 유물들이라면 뒷거래를 통해 고가로 팔 수도 있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돈이 될만한 유물에 한해서다. 고서라면 모를까 화석을 대체 뭐하러 훔쳐간단 말인가.

"이 라이도스의 서도 일단은 고서니까 그 알템플인가 뭔가하는 녀석들이 노릴 가능성이 있다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그리고 녀석들이 가장 노리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내 질문에 운전을 하고 있는 자가 대신 대답했다.

"라이도스의 서를 집필한 라이도스는 우리 세계의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고대 주술사였습니다.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면 죽은 사람을 살린다던가, 죽을 병에 걸린 사람을 낫게 한다던가 기후를 조작하여 비를 내리게 한다던가 하는 얘기들이 많죠. 하지만 정확하게 그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아는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 남아있는 기록으로 보면 그 능력 때문에 상당히 많은 신봉자가 있었다고 하네요."

거참, 우리 세계로 따지면 예수님 같은 존재인가? 어느 세계를 보던지 꼭 선지자 비스무리한 사람이 있기는 하군.

"하지만 그 능력을 사용하는데는 꼭 대가가 필요했다고 합니다."

"대가라니요?"

"살아있는 사람의 심장 말이죠."

꽥! 아까 한 말 취소다. 이건 완전히 사이비 종교다. 그것도 질이 상당히 안좋은. 그런 놈을 예수님과 비교하다니. 예수님 잘못했습니다. 그러니 벌만 내리지 말아주세요. 안그래도 힘든 인생인데 더 힘들게 하지는 않으시겠죠?

집무관님도 산 사람의 심장을 대가로 능력을 구사했다는 말에 기분이 나쁜지 얼굴을 찌뿌렸다.
찌뿌린 얼굴도 예쁘네. 대체 어떤 유전자를 가지고 있어야 이런 사람이 나오는지 궁금하다.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다른 한 사람을 죽여야 한다니 말도 안돼요."

그건 집무관님의 말이 맞다. 1을 구하기 위해 또 다른 1을 죽이면 아예 안한 것만 못하니까. 그러니까 일단 말을 종합해보면 알템플이라는 과격파 테러리스트들이 알 수 없는 목적 때문에 고대 유물을 박물관에서 훔치고 있는데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라이도스의 서도 그 중 하나라는 거다.

젠장, 이거 완전 x밟은 거다. 왜 이 중요한 사실을 엘리사나 스크라이어 사서장은 나에게 알려주지 않은 거지? 날 물먹이기 위해서 이런 사실을 감추고 있었을 리가 없고.

'설마 그 둘도 모르고 있었다는 건가?'

정보차단, 그거라면 얘기가 된다. 윗대가리 녀석들은 자신들에게 불리한 뭔가를 꾸미고 있는 엘리사에게 제재를 가하기 위해 측근이라고도 할 수 있는 나를 함정에 빠뜨린 거다. 게다가 집무관님은 자신도 모르게 이런 더러운 일에 말려든 거고. 희생양이라는 건가?
지금 당장 엘리사에게 연락할 방법도 없는 상황에 나는 어찌 해야할지 생각에 빠졌다.

'제기랄, 난 그냥 평범한 국원이라고! 왜 이런 일에 말려들어야 하는 건데!?'

단지 엘리사의 친구라는 이유만으로 이번 일에 말려든 현실이 괴롭다. 내 소원은 어디까지나 평범하게 일해서 평범하게 결혼하고 평범하게 살아서 가족들이 지켜주는 앞에서 침대에서 편하게 죽는 거란 말이다. 그런데 날 함정에 빠뜨리다니. 윗대가리 녀석들, 반드시 네놈들을 스트레스성 위염으로 위장에 구멍이 나게 만들어 줄테다.

"그럼 저기 뒤에서 따라오는 놈들도 그 알템플인가 하는 놈들과 한패 일 수도 있겠군요."

집무관님은 깜짝 놀라 고개를 뒤로 돌려 따라오고 있는 차를 보았다. 진짜 모르고 있었구나.

"아~, 아닙니다. 그들은 우리 편입니다. 언제 놈들이 공격해올지 모르니 허술한 방비를 하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우리가 휴양지에서 접선을 한다는 정보는 극비지만 혹시 모를 보험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우리를 안내해주는 자의 말을 들으니 내 예상이 틀렸다는 것을 알았다. 다행이라고 해야하나.
집무관님은 안심이 된듯 안도의 한숨을 쉬었지만 곧 뭔가 우울해진 듯 고개를 살짝 떨궜다.
갑자기 왜 이러시지? 내가 나도 모르게 뭔가 이상한 짓을 집무관님에게 한건가?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집무관님."

"예?! 아니, 그게...."

내가 묻자 집무관님은 조금 놀란 표정으로 나를 보더니 다시 고개를 떨궜다.
혹시 내가 물으면 안되는 것을 물은 건가? 괜히 다시 물어보는 것도 이상하고 해서 난 가만히 있기로 했다. 그런데 집무관님이 먼저 입을 여는 것이다. 뭐야? 내가 물어볼 때는 말을 안하고 가만히 있으니까 말을 하고. 사람 헷갈리게 하시는 분이군.

"저기, 그러니까.... 케이씨는 시공관리국에서 일한지 얼마나 되셨나요?"

"예? 음... 그러니까 훈련생 4년, 본국무장대에서 3년 가까이 되니까. 7년 조금 안되는군요."

"저보다 적군요."

아니! 그래서 어쩌라는 거야!? 갑자기 내 근무 년수를 묻더니 자기보다 적다고 말하면서 지금 나보다 더 오래 근무했다고 뻐기는 건가?

"전 시공관리국에서 일 한지 10년 가까이 되요. 케이씨보다 더 많이 일했는데, 아무리 우리 편이라고는 하지만 뒤에서 누군가가 따라오는데도 눈치채지 못하다니...."

'아, 그런 거였나? 난 또 뭐라고.'

말주변이 없는 나로서는 이런 때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아니 그전에 모를 수도 있지 겨우 그런 거 가지고 침울해지는 집무관님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뭐라도 말을 해서 위로라도 해야겠는데 좀 처럼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렇게 몇 분을 차를 타고 이동하고 도착한 곳은 굉장히 고급스러운 대형 리조트 하우스였다.
차에서 내려 안내하는 자를 따라간 집무관님과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 층까지 올라가 그 층에 있는 투숙실 문앞에서 멈춰섰다.

"이 방에서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요. 여러분들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특별실이니 안에서 기다리시면 조금 있다가 사람이 부르러 올겁니다. 자, 여기 키를 받으십시오. 1004호와 1005호입니다. 서로 마음에 드시는 방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집무관님은 1004호로 나는 1005호로 들어갔다.
내가 들어간 1005의 방은 특별실인 만큼 굉장히 호사스러운 방이었다. 세상에 내 인생에 이런 곳까지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대체 이 방 빌리는데 드는 돈은 얼마나 되는거야?
내가 그렇게 감탄하고 있는 사이 누군가가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고 내가 문을 열으니 종업원으로 보이는 자가 잘 개어져있는 옷뭉치를 나에게 건넸다.

"그것으로 갈아입으시고 나오시면 됩니다."

옷뭉치를 받아보니 그것은 트렁크 수영복과 가벼운 겉옷이었다.
이곳이 리조트라서 그런지 수영복을 입고 오라는 건가? 하긴 손님으로 가장해 자연스럽게 만나는 것도 방법 중 하나이긴 하다.

옷을 벗고 종업원이 가져다준 수영복과 겉옷을 입고 밖으로 나오니 이미 집무관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거 눈이 호강하는군.'

새하얀 피부와 대조적인 검은 색의 비키니를 입은 집무관님의 모습은 정말이지 남자라면 누구라고 눈길을 뗄 수없을 정도의 섹시함 그 자체였다. 내 나이 28살에 10살이나 어린 집무관님의 모습을 보고 흥분하다니, 나이값도 못하는 놈인가 나는.... 정신 차려라, 조카 뻘 되는 사람한테 뭐하는 건지...

"저, 저기.... 너무 그렇게 쳐다보지 말아주세요."

비키니를 입은 모습이 부끄러운 듯 집무관님은 얼굴을 붉히며 그 가녀린 팔로 몸을 가려보려고 하지만, 집무관님은 알까? 그 모습이 사내들을 더 미치게 만들 것 같다는 것을.

수영복으로 갈아입은 나와 집무관님은 우리를 안내하는 자를 따라 리조트 하우스에 설치되어있는 수영장으로 갔다. 문제는 남자녀석들의 시선도 우리를 따라왔다는 거다. 아니 정확하게는 집무관님이지만. 집무관님도 자신을 바라보는 수많은 시선들을 느꼈는지 부끄러워서 얼굴을 붉히며 간신히 따라고 오고 있었다. 하긴 저 놈들의 마음도 이해가 간다. 군살 하나 없는 몸매에 희디 흰 피부, 나올 데는 확실히 나와있고 들어갈 데는 확실히 들어가있는 저 완벽한 몸매에 어느 남자가 시선을 뺏기지 않을 수 있으리오. 하지만 우린 놀러온 것이 아니다.

'이런 이런, 너무 눈에 띄는 것 같은데.'

할 수 없이 난 겉옷을 벗어 집무관님의 상체에 덮어주었다. 그와 동시에 남자 녀석들의 원망어린 시선을 한 몸에 받았지만.

'저 썩을 놈 보소!'

'아놔! 저 놈 대체 뭐야?!'

'저런 천 번 죽여도 시원찮을 놈!'

아아, 원망어린 마음들이 나에게 모이고 있구나. 이 마음들을 모으면 X기옥이라도 쏠 수 있을 것 같다. 모두의 힘을 나에게 나눠줘~ 그리고 네놈들한테 던져주마.
집무관님은 겉옷으로 몸을 덮어준 것이 고마웠는지 아직 붉어져 있는 얼굴로 나를 보며.

"고, 고마워요."

이, 이건 예상치 못한 엄청난 충격이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전신의 혈류가 거꾸로 흐르는 것 같다. 이 나에게 이 정도의 충격을 줄 줄이야. 역시 집무관이로군. 하지만 그와 반대로 정말 괴롭혀보고 싶은 타입이라고나 할까? 해서 덮어주었던 겉옷을 잽싸게 다시 빼앗아버렸다.

"아!"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한 집무관님의 모습, 뭐지?! 내 안의 뭔가가 각성할 것 같다.
다시 내가 겉옷을 덮어주자 안심한 듯한 표정을 짓는 집무관님이지만 이런 재미있는 것을 얌전히 포기할 내가 아니기에 다시 겉옷을 빼앗았다.

"아!"

벗기고 입히고, 벗기고 입히고를 몇 번 반복하다보니 이것도 왠지 좀 질리지만 집무관님의 표정이 재밌어서 그만 두기도 뭔가 좀 아쉽다.

"괴, 괴롭히지 말아주세요."

"아,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그만..."

애절하게 부탁하는 집무관님의 모습은 뭐랄까? 마치 괴롭힘 당하는 새끼 고양이를 연상시킨다고 할까. 그래서 더 괴롭히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우리 주위에서 얼굴을 붉히며 하악거리는 저 변태 남정네 녀석들도 나와 비슷한 생각일 거다. 하지만 이렇게 부탁하는 여성을 계속해서 괴롭히는 새디스틱한 취미는 없으니 더 이상 겉옷을 벗기는 짓은 하지 않았다. 설령 주위에서 아쉬움이 섞인 한탄의 한숨들이 내 귀를 간지럽히더라도 말이다.

'코피나 닦아라, 이것들아.'

잠깐동안의 재밌는 이벤트를 마치고 접선자가 있는 곳까지 도착하자 그곳에는 금발에 나와 같은 수영복과 선글라스를 끼고 비치 파라솔의 의자에 앉아있는 자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자 여럿 울렸을 것 같은 놈이로군. 한마디로 남자인 나에게는 재수없는 놈이다.
그놈은 우리를 보더니 선글라스를 벗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우리에게 다가왔다.

"드디어 오셨군요. 제 이름은 세베릭 폴라이드라고 합니다. 갑자기 접선 장소를 바꿔서 당황하셨을 겁니다. 사전에 아무런 통보도 없었던 점, 정말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닙니다. 이쪽 상황이 상황인 만큼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요."

집무관님도 성격이 참 너그러우시다. 이런 경우에는 확실히 따져야 하는데 말이다.

"정말 그 미모 만큼이나 관대한 마음씨를 가지신 분이시로군요. 이해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러면서 세베릭이란 놈은 집무관님의 한 쪽손을 잡아 손등에 키스를 했다.
아니, 저런 xx하고 yy한 놈을 봤나!? 하는 짓이 정말 마음에 안드는 놈이로구만.
집무관님, 거기서 얼굴은 왜 붉히십니까? 역시 집무관님도 미남이면 뭐를 해도 다 용서해주는 그런 시시한 여자입니까? 미남 쪽이 좋다 이겁니까?! 그저 여자들은 잘 생긴 녀석들만 보면 헤롱헤롱해서는.

"자, 자리에 앉으시지요. 이봐, 여기 이 분들에게 마실 것 좀 가져다드리게."

얼마 안 있어 종업원이 오더니 집무관님과 나에게 음료수를 내왔다. 과일이 꽂아져있는 커다란 글래스잔에 담긴 파란 색의 음료를 보니 마침 목이 말랐던 차라 꽂아져 있던 빨대를 빼버리고 한 모금을 마셨다.

집무관님도 목이 말랐던 모양인지 빨대로 음료수를 마시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왠지 모르게 귀여웠달까? 뭐를 하든 예쁘구만. 젠장, 평범한 삶을 지향하지만 보너스 차원으로 저런 여자친구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럼 목도 축이신 것 같은데 본격적으로 일 얘기를 해볼까요?"

세베릭의 말에 집무관님은 가지고 있던 라이도스의 서를 그에게 건넸다.
라이도스의 서를 받은 세베릭은 그것이 진본인지 아닌지 확인하려는 건지 책을 펼쳐 천천히 살펴보았다. 뭐야? 우리가 지금 가짜라도 가지고 왔는지 의심하고 있다는 건가?
내가 인상을 조금 찌뿌리자 집무관님이 눈치챘는지 염화를 날렸다.

'케이씨, 얼굴 좀 피세요. 저쪽 분들에게 실례라구요.'

'실례를 한 쪽은 저쪽입니다. 우리가 무슨 폭력 조직끼리의 거래를 하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저 분들에게는 그만큼 중요한 일이라구요. 물건의 진위여부를 확인 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에요.'

집무관님의 말도 틀린 건 아니지만 열 받는 건 어쩔 수 없다.
내 불편한 심기를 읽었는지 세베릭이 책을 덮어 테이블 위로 올려놓고 웃으며 말했다.

"이런, 제가 여러분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해드린 것 같군요. 하지만 저희로서는 중요한 사안이니 만큼 신중에 신중을 가해야하는 형편이니 부디 너그럽게 용서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확인한 결과 어떻습니까?"

내 불만이 가득한 말투에 집무관님도 포기했는지 한숨을 쉬었다. 그래요, 집무님 포기하면 편해집니다.

"확실히 라이도스의 서 진본이 맞군요. 이렇게 무사히 저희 손에 들어온 것도 전부 든든한 두 분이 계신 덕분입니다."

아첨을 잘 하는 자로군. 하지만 난 삐뚤어진 성격이라서 그런지 잘 모르는 누군가가 내 칭찬을 하는 것을 말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히려 날 놀리는 느낌이 든다고 해야겠지.

"아닙니다. 저희는 한 것도 없는데요. 그런데 이 곳 상황이 그렇게 안좋은 건가요?"

집무관님의 질문은 나도 궁금해하고 있던 거다. 얼마나 좋지 않은 상황이기에 공식적인 접선 장소까지 바꿔가며 이런 곳에서 만나기로 한 건지 알고 싶었다. 세베릭이 근심어린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솔직히 그다지 좋은 상황이 아닙니다. 무슨 이유에선지 이쪽의 정보가 새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유물들을 안전한 곳으로 옮기려고 해도 알템플 녀석들이 중간에 가로채버리더군요."

세베릭의 말을 들어보니 이건 그다지 좋지 않은 상황이 아니라 확실히 좋지 않은 상황이다.
더군다나 정보가 새고 있다면 내부에 스파이가 있다는 것인데.

"문제는 이쪽은 그들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다는 겁니다. 그들이 어느 정도의 규모인지 조차 파악이 안되고 있으니까요. 알고 있는 것은 단지 그들이 무슨 목적을 위해 유물들을 강탈하고 있다는 겁니다."

"예상보다 심각한 상황이군요. 계속 이런 식의 테러가 일어난다면 치안유지에도 문제가 생길 텐데요?"

"예, 그래서 저희도 어느 정도의 언론 통제를 하고 있지만 한계라는 것이 있으니까요. 지금 치안유지에 대부분의 인력을 투입하고 있어서 테러를 막을 인력이 모자라는 판국입니다.."

하긴 정부가 아무리 언론통제를 한다고 해도 387관리 세계가 무슨 조선 시대도 아니고 각종 미디어 매체가 수두룩한 이상 완전 차단까지는 무리일 것이다. 국민들의 눈과 귀를 가리는 것도 결국은 밝혀지게 되어있으니까. 게다가 적의 목적도 밝혀지지 않아서 적이 어떻게 나올지도 모르기에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치안 유지 밖에 없는 것이다.

"이 문제는 단순히 이 곳만의 문제가 아니군요. 알템플이란 자들이 시공관리국과의 외교 단절까지 외치는 마당에 한시라도 빨리 본국과 연락해서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저희도 시공관리국에 몇 번이나 지원을 요청했지만 그쪽도 인력이 부족하다며 시간을 달라는 말뿐이더군요."

집무관님과 세베릭의 대화에 나는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섣부른 판단은 금물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해서 세베릭에게 물었다.

"저기 테러가 일어나기 시작한 시기가 언제입니까?"

"대략 한달 전 부터입니다."

한달 전? 아까 집무관님과 세베릭과의 대화에서 느껴지던 이상한 느낌이 더욱 강렬해졌다.
뭐지? 뭔가 꺼림직한 느낌이 들기는 하는데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겠다.

"저도 이곳의 상황이 이렇게까지 나쁜 줄은 몰랐습니다. 저도 본국으로 돌아가면 이곳의 상황을 상세히 설명하고 지원을 하도록 탄원하겠습니다."

"집무관님께서 그렇게까지 말씀해주시니 정말 감사드립니다."

뭔가가 있다. 그런데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이럴 때는 정말이지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다.
알 것 같으면서도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이 있다면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집무관님이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나도 생각을 멈추고 일어나려고 했다. 그때 예전에 엘리사가 나에게 했던 말이 생각났다.

'의문이라는 것은 결국 퍼즐과 마찬가지야. 하나의 퍼즐을 완성하려면 하나 하나의 조각이 필요해. 그 조각이 바로 정보야. 그리고 그 정보라는 조각을 하나씩 맞추다 보면 결국 그림이 보이게 되어 있어. 내 말 명심해둬. 아주 작은 조각이라도 놓치면 안돼. 때론 그 작은 조각이 모든 의문을 풀 수 있는 열쇠가 되기도 하니까.'

그 마녀의 말이 갑자기 내 뒷통수를 때렸다. 그래, 나에게는 그 작은 조각이 없다. 그 작은 조각을 가지고 있는 자는 바로,

"저기 죄송하지만 한 가지만 더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죠. 말씀하세요."

내가 세베릭에게 질문을 하자 집무관님도 약간 당황한 듯 그 자리에서 멈춰섰다.

"시공관리국에 지원을 요청한 시기가 언제입니까?"

"음, 대략 2주일 전입니다."

"그렇군요. 그럼 집무관님, 시공관리국에서는 이곳의 지원에 관한 설명은 없었나요?"

집무관님은 자신에게 질문할 것이라고는 예상 못했는지 조금 놀란 표정으로 답해주었다.

"예? 아, 예. 저는 그냥 라이도스의 서를 무사히 전달해주기만 하면 된다고..."

빌어먹을! 아까부터 느꼈던 이상한 느낌이 드디어 풀렸다. 아쉽게도 집무관님은 모를 수 밖에 없는, 지금 이곳에서 나 밖에 알 도리가 없는 그 의문이 풀린 것이다.
그와 동시에 나는 테이블에 있던 라이도스의 서를 재빨리 집어든 다음 발로 테이블을 강하게 걷어차버렸다.

"케, 케이씨 갑자기 무슨 짓을! 꺄악!"

생각할 시간이 없다. 나는 집무관님의 손을 잡고 재빨리 우리의 짐이 있는 투숙실로 뛰었다.
그곳에 짐과 함께 디바이스가 있으니까.

"잡아! 놓치지 마라!"

뒤에서 들려오는 녀석들의 고함이 내 귀에 들렸다. 빌어먹을! 정말 나쁜 예감은 하나도 틀리지 않는다니까!

"케이씨! 갑자기 왜 이러세요?!"

"함정입니다!"

"예?"

내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의 집무관님에게 나는 내가 알아버린 사실을 말해주었다.

"함정이라고요! 저 녀석들은 정부 사람이 아니에요. 저들은 알템플입니다!"

by 라돌이 | 2009/09/01 02:04 | ㄴ장편 | 트랙백 | 덧글(0)

[나노하X오리지널] 어느 국원의 Dangerous한 라이프 스토리 2화

"나카지마 소령님께서 이렇게 빨리 저를 찾아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미리 연락을 해주셨다면 제가 직접 마중을 나갔을텐데요."

"바쁜 사람한테 마중까지 나오게 할 수야 없지 않은가. 신경쓰지 말게나."

엘리사는 두 사람에게 차를 내주며 자신도 자리에 앉았다.

"그럼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요?"

엘리사의 말에 차를 마시던 나카지마 겐야는 고개를 돌려 긴가를 보았고 긴가는 고개를 끄덕이며 가지고 있던 서류봉투를 엘리사에게 건넸다.
서류 봉투를 건네받은 엘리사는 서류 봉투 안에서 빼곡히 글자들이 적혀 있는 서류들을 꺼내 읽어 보고는 만족한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과연 나카지마 소령님이십니다. 여기까지 조사를 하시다니. 이정도의 자료를 구하시는데 힘드셨을 텐데 제가 무리한 부탁을 드렸네요. 죄송합니다."

"아니, 괜찮네. 돌아가신 자네 아버지에게도 신세를 진 적이 있으니 이 정도 부탁은 들어줘야지."

한 때 나카지마 겐야와 전우 사이였던 엘리사의 아버지는 임무 도중 순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머니와 둘이서 힘들게 살던 엘리사가 출세에 연연했던 것도 어찌보면 그녀의 성장배경에 있을지도 몰랐다. 나카지마 겐야 또한 그녀의 과거를 알고 있기에 도와주는 것이지만 가끔은 무리를 하는게 아닌지 걱정 또한 되기도 했다. 하지만 좋지 않은 과거를 들추는 것도 좋지 않기에 입을 다물고 있는 것 뿐이었다.

"그러고보니 아직 축하 인사도 못드렸군요. 긴가양, 늦었지만 하사 승진 축하드려요. 그리고 이건 승진 축하 선물이에요. 받아주세요."

"예?! 아뇨, 괜찮습니다. 마음만 감사히 받을게요."

"그다지 비싼 것은 아니니 사양할 필요는 없어요. 받아두세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선물에 어떨떨한 기분으로 선물을 받아든 긴가가 포장을 풀자 그 안에는 꽤 세련된 디자인의 만년필이 들어있었다.

"와, 이거 굉장히 비싼 것 같은데, 정말 받아도 괜찮은건가요?"

"물론이죠. 마음에 든 것 같아서 선물한 저도 기분이 좋아지네요."

긴가가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아 보이자 엘리사도 미소를 지었다. 나카지마 소령도 자신의 딸이 기뻐하는 모습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런 걸 준비해주다니. 이거 미안하구만."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호의이니 신경쓰지 마세요."

"이거 부탁할 것이 있었는데 이런 선물까지 주면 말을 할 수가 없구만."

"부탁할 것이라뇨? 말씀 해보세요. 제 선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면 해드리겠습니다."

이런 식의 빚을 지게 만드는 것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 엘리사는 나카지마 소령이 어떤 부탁을 할 것인지 기대했다. 그 부탁이 어려운 것일 수록 빚은 커지기 마련이고 나중을 위해서라도 받아들이는 것이 좋은 것이기 때문이다.

"케이 중사라는 국원, 자네 밑에 있는 사람이지?"

"예, 그렇습니다만."

엘리사는 왜 나카지마 소령의 입에서 갑자기 케이의 이름이 나오는 것인지 의문스러웠다.

"듣자하니 그의 능력을 보건데 무장대에 있기는 아까운 실력이더군. 마침 우리 육군 쪽에 사람이 부족한데, 어떤가? 그를 우리 육군에 전출시켜 주지...."

"안됩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거절의 의사를 표하는 엘리사의 단호한 태도에 나카지마 소령과 긴가는 꿀먹은 벙어리 마냥 멍해졌다. 잠시 생각해보는 것도 아니라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예 단칼에 거절을 하니 할 말이 없어진 것이다.
분위기가 조금 어색해졌지만 엘리사의 태도에는 변화가 없었다. 절대 그를 줄 수 없다는 단호한 의사 표현이다.

"그러지 말고 생각을 좀 해보는게 어떤가? 그의 마도사로서 랭크를 생각해봐도 본국무장대에 있기에는 아깝지 않겠나."

"아무리 나카지마 소령님의 부탁이라도 그건 절대 들어드릴 수 없습니다."

"무슨 이유라도 있는건가?"

나카지마 소령의 질문에 엘리사가 답했다.

"그는 우리 본국무장대의 비밀 무기거든요."
.
.
.
나는 지금 엘리사로부터 축객령이 떨어진 후에 387관리 세계로 가기 위해 차원 항해함을 타고있다. 그런데 예측하지 못한 사태가 발생했다.

"저기 제 말 듣고 계세요?"

그 사태라는게 바로 내 눈앞에 있는 이 사람이다. 이름이 뭐랬더라? 아, '페이트 T.하라오운'이라고 했었지. 시공관리국 내에서도 남자는 물론 여자 국원들까지 팬이 있을 정도로 유명한 집무관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뭐 나야, 여자보다는 담배가 더 좋은데다가 내 할 일도 하기 바쁘기에 그런 것에 관심을 둘 생각이 없었지만 정작 눈 앞에서 보니 그 팬이라는 놈들의 기분을 이해할 것도 같다.

흐르는 물결같이 찰랑거리는 긴 금발에 예쁘다는 말로는 부족하다고 할 수 있는 얼굴, 제복으로 감싸도 짐작할 수 있는 저 육감적인 몸매. 게다가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집무관에 발탁될 정도로 뛰어난 능력. 정말 신에게 사랑받는 존재가 있다면 저 여자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게다가 18살에 오버 S랭크라니....정말이지 넘사벽이라는 말이 어울린다. 하지만 지금 내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저기....."

"아, 죄송합니다. 다시 한 번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지금 제가 잘못 들은 것이 아니라면 이번 임무를 집무관님께서 맡게 되셨다고요?"

"예, 본국의 명령하에 이번 387관리 세계에 반환하기로 되어있는 '라이도스의 서' 반환 임무를 제가 맡게 되었습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내가 전달하기로 해서 무한 서고에서 받아온 이 '라이도스의 서'를 갑자기 왜 이 여자가 맡는다는 거지? 아니 그 전에 미신이나 잡다한 지식 같은 것만 적혀져 있는 책을 전달하는 일에 집무관씩이나 되는 사람한테 맡긴다는 게 말이 되지 않는다.

"뭔가 착오가 있는 것 같은데, 이번 임무는 제 단독 임무로 되어있습니다. 제 상관에게도 직접 그렇게 들었고요. 잘못 알고 계신 것 아닙니까?"

"예? 그럴리가요? 자, 여기 본국에서 저에게 보내온 서류입니다."

난 재빨리 그녀의 손에서 서류를 낚아채 읽어보았다. 내용인즉, 387관리 세계는 미신에 대한 믿음이 유난히 강해 라이도스의 서는 그들에게 있어 정말 소중한 책이다, 그러니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정치적인 문제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에 문제 방치차 실력있는 자에게 맡긴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대로 임무를 속행하되 하라오운 집무관의 보좌를 맡으라는 내용이다.

이 상황에서 누군가가 나에게 참으라고 한다면 그 녀석의 얼굴을 빵의 반죽처럼 만들어 버릴테다. 내 단독 임무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다는 것은 나를 못믿는 것을 넘어서서, 엄연히 나를 무시하는 것이다. 나를 무시하는 것은 참을 수 있다. 허나 나를 무시하는 것은 참을 수 없어!(응?)

엘리사에게 당장이라도 따지고 싶지만 아마 그녀도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내 성격을 알면서도 이런 명령을 내릴 엘리사가 아니니까. 그렇다면 본국의 윗대가리들이 멋대로 저지른 일이라는 것인데.

'이건 나를 노리고 한 짓이 아니라 엘리사를 경계하기 위한 술책일 수도 있겠군.'

엘리사가 아무리 숨기려고 한다고 해도 몇 년째 그 녀석과 어울리고 있는 나는 엘리사가 무언가를 꾸미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것이 윗대가리들한테 불리한 것이라는 것도 말이다. 하지만 함부로 건드릴 수 없으니 이렇게 돌려서 그 녀석하고 친한 나를 노린 것이겠지.

'엘리사를 건드렸다가는 그 녀석의 뒤에 있는 자들과 수많은 무장국원들이 들고 일어날테니 이렇게라도 돌려서 쑤셔본다는 건가? 같잖은 짓을 하는구만.'

서류를 들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갔는지 종이가 구겨지는 소리가 들렸다. 집무관님도 깜짝 놀랐는지 조금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나에게 따지지는 않는다.

단독임무에 누군가가 함부로 끼어드는 것이 그 국원의 기분을 상하게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겠지. 그렇다고 내가 열받아서 눈 앞의 집무관을 패거나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여자는 때리지 않는 주의기도 하지만 오히려 내가 박살이나 나지 않으면 다행일테니.

"후우, 알겠습니다. 어차피 이렇게 된거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예, 저야말로 잘 부탁...."

집무관님에게는 아무 잘못없다. 그저 명령에 따른 것 뿐이니까. 하지만 난 속이 좁은 놈이다.
이렇게 대놓고 무시당해놓고 기분이 좋을리 없는 나는 잘 부탁한다며 손을 내밀려는 집무관님을 무시하고 다른 곳으로 걸어갔다. 하급자가 상급자에게 이런행동을 하는 것은 문책을 받아 마땅하나, 어쩌랴? 나는 그런거 상관 안하는 놈이거든.

그렇게 우리 둘의 대화가 끝나자 근처에서 보고 있던 함대 소속의 국원들이 집무관님에게 다가가 말했다.

"어떻게 집무관님에게 저런 무례한 행동을 할 수 있는 거죠? 상식이라는 게 있는지 의심스럽네."

"맞습니다. 저런 무뢰배와 함께 일하시게 되다니. 힘드시겠지만 조금만 참으세요."

"생긴 것도 이상하게 생긴 놈이 감히 집무관님을 무시하다니. 천 번 죽여도 부족해요."

"저 놈이 그 유명한 상관킬러라는 놈이지? 소문대로 막나가는 놈이군요. 집무관님도 조심하세요. 어떤 비열한 짓을 할지 모르니까요."

'다 들린다, 이것들아! 어디 나중에 두고 보자. 나 뒤끝 있는 놈이라고!'

저놈들은 분명히 소문의 하라오운 집무관님의 팬클럽에 속해있는 녀석들이 틀림없다.
팬클럽 녀석들이 발이 넓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런 함대 안의 국원들까지 속해 있을 줄이야.
감탄 아닌 감탄을 하고 있을 때 놈들의 나에 대한 험담은 계속 되고 있었다.

"정말 여자에게 저런 태도를 하다니. 분명 여자친구 한 번 사귀어보지 못했을 거야."

'그건 사실이니 반론할 여지가 없군.'

"있어도 일주일도 안되서 채일 걸."

'어쭈! 점점...'

"조루 같아 보여."

'마지막에 누구야!!!'
.
.
.
어떻게든 이 감당할 수 없는 스트레스를 풀어야한다. 스트레스를 쌓아두면 건강에도 좋지 않다고 하니까. 그래서 내가 간 곳이 바로 이 차원 항해함 내에 구비 되어있는 가상 전투 훈련장이었다.
땀이라도 흘려서 이 스트레스를 풀 생각에 나는 그곳을 담당하는 국원에게 부탁한 뒤 훈련장 안으로 들어왔다.

"후우~ 그럼 시작해볼까?"

주머니에서 대기모드 상태의 내 디바이스 '듀얼 레이지'를 꺼냈다. 대기모드 상태에서는 손목에 차는 밴드 형태지만 기본 형태가 되면 오른손에는 도검, 왼손에는 건틀릿이 장착된다.
관리국 내에서도 상당히 특이한 형태지만 이런 형태로 부탁한 것은 바로 나다.

그 이유는 내가 자주 하던 게임의 주인공이 한 손에는 검을 한손에는 건틀렛을 착용하여 적들을 쓸어버리는 모습이 정말 간지작살이었기 때문이었다. 뭘 모르던 애송이 시절이었기에 내린 결과에 그렇게 죽도록 고생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내가 죽도록 고생한 이유는 바로 내가 암드 디바이스를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마도사로 등록되어있는 것에서 알 수 있다. 그렇다. 난 베르카식 마법에 어울리는 암드 디바이스를 쓰면서도 미드칠더식 마법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어울리지 않는 이 조합 때문에 고생을 한 것을 생각하면 아직도 치가 떨린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 의지의 한국이라는 말 들어봤는가?

안되면 되게 하라, 그것이 한국인의 의지 아닌가. 그래서 난 결국 기존의 전투법을 완전히 배제하고 나만의 전투 스타일을 만들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흘린 피와 땀이 결국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이다. 하지만 또 해보라는 말을 듣는다면...

"절대 못하지~"

그 때 훈련을 한 것을 생각하면 정말 소름이 돋는다. 주위의 동기 훈련생들은 물론이고 교관님들까지 제발 그만 두라고 할 정도였으니까. 그때는 내가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단순한 자존심 때문이었을까?
잠시동안 과거의 일을 생각하던 것을 멈추고 난 듀얼 레이지를 왼쪽 손목에 착용하였다.

"준비 됐냐, 파트너?"

[YES, MY MASTER. MODE CHANGE STANDING BY....]

난 그대로 듀얼 레이지를 벗어 땅바닥에 내던졌다.

'철퍼덕!'

[OH! WHAT THE...]

"내가 영어로 씨부리지 말랬지? 주인의 말을 무시하는 거냐?!"

[죄송합니다, 마스터. 하지만 국제화에 발 맞춰서..]

"분해해서 네 회로에다가 물을 뿌려줄까?"

[그냥 미드칠더 공용어로 하죠.]

진작에 그럴 것이지. 원래 듀얼 레이지는 인텔리젼스 시스템 같은 것은 없었고 일반 스토리지 디바이스와 같이 마도사의 보조 역할만 할 수 있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엘리사가 내가 근접에만 신경 쓰고 원거리 마법이나 보조 마법에 신경을 쓰지 않아 부상을 당할 수도 있다며 그것을 보조해줄 수 있는 인텔리젼스 시스템을 장착 시켜주겠다며 귀찮아서 싫다고 발버둥 치는 내 안면에 사커킥을 날려 날 기절 시켜놓고 강제로 빼앗아가 장착시켜놓았다. 그때 정말이지 뒷통수가 꼬리뼈에 닿을뻔 했다.

[무슨 생각을 그리 하십니까?]

"아니다. 괜히 쓸데없는 기억만 생각나버렸어. 자, 시작하자!"

[예, 마스터. 전 언제나 준비 OK입니다.]

"장착! 배틀 모드로 변환!"

순간 듀얼 레이지에서 뿜어져 나온 빛이 나를 감싸며 배리어 자켓이 생성되어 내 몸을 덮었고 오른손에는 한자루의 도검이 왼손에는 건틀렛이 장착되었다.
나를 기절시켜 듀얼 레이지를 빼앗아가 멋대로 강화시킨 엘리사에게 유일하게 고마워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듀얼 레이지에 단순히 인텔리젼스 시스템만 장착한 것이 아니라 아예 업그레이드를 시켜놓은 것. 덕분에 전보다 조금 더 무거워졌지만 이정도는 충분히 커버할 정도다.

내가 준비가 됐다고 신호를 보내자 훈련장을 담당하는 국원이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패널을 조작하자 수 많은 구형의 타겟들이 나타났고 곧 나를 향해 날아왔다.

"자 간단한 것부터 시작해 볼까? 우선 스팅거 나이프!"

구형의 타겟들을 향해 건틀렛을 장착한 왼손을 뻗자 마법이 발동하며 스팅거 나이프가 타겟들을 향해 뻗어나갔다. 스팅거 나이프를 날린 나는 그대로 목표를 향해 날아가는 스팅거 나이프를 따라 빠르게 달려가 스팅거 나이프로 처리하지 못한 타겟 중 하나를 향해 도검을 양손으로 쥐어 강하고 빠르게 일섬을 날렸다.

'취잉!'

도검에 의해 반으로 갈라진 타겟이 사라지자 다른 타겟들의 움직임이 갑자기 빨라지며 나에게 달려들었다.

"겨우 이정도로!"

내가 재빨리 비행마법을 펼쳐 공중으로 피하자 타겟들도 일제히 나를 따라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오히려 내가 노리는 것이다. 나를 계속 따라오던 타겟들이 어느정도 한점으로 모이기 시작하자 나는 재빨리 멈춰서며 블레이즈 캐논을 발사했다.

'쿠웅'

블레이즈 캐논에 명중된 타겟들이 소멸하며 연기가 뿌옇게 퍼져갔고 난 그 연기를 뚫으며 도검을 휘둘러 멈춰있던 타겟들을 하나씩 썰어버렸다.

'슈각! 슈각! 슈각!'

[뒤에서 옵니다.]

듀얼 레이지의 경고에 재빨리 뒤를 돌아 나를 향해 날아오는 타겟을 도검으로 찔러넣었다.

"브레이크 임펄스."

디바이스나 맨손으로 상대와 접촉하여 상대의 고정파동을 파악하여 분쇄해버리는 마법인 브레이크 임펄스를 시전한 상태로 도검을 꽂아넣자 타겟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마지막 하나 남았습니다!]

"오케이! 듀얼 레이지, 출혈 대서비스다!"

[알겠습니다!]

마지막 한개는 듀얼 레이지와 내가 개발한 오리지널 마법으로 끝내기로 결정했다.
왼손의 건틀렛에 마력을 집중시켜 배리어를 두른 다음 타겟에게 접근하여 건틀렛으로 타겟을 움켜 잡고 마력을 연속적으로 쏟아부어 한점에서 폭발시키는 근접 마법. 이걸 완성하기 위해 얼마나 고생했던가.

"브레이크 리볼버!"

'콰앙! 콰앙! 콰앙! 콰앙!'

브레이크 리볼버를 맞은 타겟은 결국 견뎌내지 못하고 그대로 폭사하고 말았다.
내 오리지널 마법이지만 정말 대단한 위력이다. 하지만,

[사람을 상대로 쓰기에는 조금 위험한 기술이라는 것은 변함없군요.]

듀얼 레이지의 말 그대로다. 연속적인 쏘아진 마력을 한점에서 폭발 시킨다면 아무리 비살상 설정이라도 위험하다. 그래서 이걸 아직까지 사람에게 써본 적은 없었다.

"썼다가는 상대는 1급 장애인이 될 걸."

타겟을 모두 파괴한 나는 국원에게 사인을 보내 훈련을 종료시켰다. 배틀 모드를 해제하고 듀얼 레이지를 대기 모드 상태로 하고 훈련장을 나오자 그곳에는 하라오운 집무관님이 있었다.

"훈련하시는 것을 봤어요. 정말 굉장한 실력이시네요."

그녀가 지금 날 놀리는 건지 아닌지 모르겠다. 이 정도는 저 하라오운 집무관님에 비하면 새발의 피나 마찬가지다. 나는 AA+랭크고 그녀는 오버 S랭크, 실력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있다.

"특히, 근접전에 대한 센스와 마지막 그 마법은 정말 놀랐어요. 손을 보호하기 위해 마력으로 손을 감싼 뒤 적에게 접근해서 마력을 연속적으로 쏟아부어 한점에서 폭발시키는 마법이라니, 전 본적도 없는 마법인데 스스로 개발하신 건가요?"

집무관님의 말에 놀란 것은 오히려 나다. 단 한 번만 보고도 브레이크 리볼버의 특성을 파악하다니. 역시 천재라는 건가?

"하지만 그 마법은 잘못 사용하면 당하는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시전자 또한 무사하지 못할 것 같네요. 그 연속적으로 쏟아붓는 마력의 양을 적절히 조절하지 못하면 왼팔이 날아갈 수도 있을 것 같으니까요."

완전히 졌다. 집무관님은 브레이크 리볼버의 특성은 물론이고 약점까지 단 한 번만 보고도 파악해버린 것이다. 재능의 차이는 어쩔 수 없다는 건가. 내가 피땀 흘려 완성한 오리지널 기술이 단 한 번에 파악되다니 이거 왠지 씁쓸하구만.

"조금만 더 보완 한다면 더 굉장한 마법이 될거에요."

"그래서 하실 말씀은 그것 뿐입니까?"

"예?"

젠장! 이게 아닌데. 나도 모르게 집무관님에게 차갑게 대하고 있다. 내 임무를 가로챘다는 생각이 그녀를 불쾌한 존재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녀의 탓도 아닌데 말이다. 이래서 나한테 여자 친구가 생기지 않는 건가? 입과 마음이 따로 노는 이 버릇 좀 빨리 고쳐야 할텐데.

"단순히 제 마법에 대한 평가를 하실 생각이시라면 이만 가보겠습니다."

"아....잠시만요!"

집무관님을 지나쳐 가려고 할때 내 뒤로 집무관님이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 몸을 돌려 그녀를 보니 나에게 걸어오고 있었다. 설마 뺨이라도 때리려는 걸까? 하지만 내 예상과는 다르게 집무관님은 내게 오른손을 내밀었다.

"중사님의 임무를 내가 맡게 되어 불쾌하신 줄은 압니다. 중사님의 입장에서 저는 중간에 끼어든 불청객에 불과하겠죠. 하지만 전 이 일에 긍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돕고 그들의 얼굴에서 웃음을 잃게 하지 않기 위해 전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불쾌한 감정은 잠시 접어두고 서로 협력했으면 합니다."

집무관님의 눈은 나를 똑바로 보고 있다. 그 눈에 결코 거짓은 보이지 않았다.
강한 신념과 올곧은 마음이 눈에 보인다고나 할까? 이거 완전히 내가 나쁜 놈이 된 기분이로군.
내 눈 앞에 어린 집무관님은 정말이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어른스럽다. 깨끗하고 고귀하다는 말이 딱 이럴 때 쓰는 걸까? 난 그런 사람이 결코 싫지 않다.

"좋습니다. 쓸데없는 자존심은 잠시 접어두기로 하죠."

난 오른손을 뻗어 집무관님과 악수를 했다.

"아, 감사합니다. 저 열심히 할게요. 그러니 잘 부탁드려요."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집무관님."

우리는 악수를 하며 서로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런 것도 신뢰관계를 쌓아간다는 거겠지.

"저기 그런데 집무관님. 한 가지만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예? 물론이죠. 말씀하세요."

"담배 필줄 아십니까?"

".........."

by 라돌이 | 2009/08/31 02:09 | ㄴ장편 | 트랙백 | 덧글(0)

[나노하X오리지널] 어느 국원의 Dangerous한 라이프 스토리 1화

마른 하늘에 날벼락 떨어진다라는 말을 아는가? 물론 모르는 사람이야 없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인생을 살면서 한 두번 정도 저런 경우를 당해봤을테니까. 물론 말 그대로 날벼락 맞는다는 얘기는 아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갑작스러운 일을 당할 때면 저런 속담을 자주 쓴다.
지금 내 경우가 딱 저 속담에 맞다고 해야하나?

"그러니까 다시 한 번만 말해줄래?"

"벌써 귀가 안들리기 시작해? 출장 좀 다녀오라고."

"그 출장이라는 거 갔다온지 며칠이나 됐다고 또 가라는 거야!?"

정확하게 3일 전에 난 분명히 출장을 갔다왔다. 그것도 로스트 로기아 탐색이라는 임무를 위해 흐르는 콧물도 얼어버릴 정도로 추운 곳으로 말이다. 내 고향 지구에서 남극이라는 곳이 있는데 가본 적은 없지만 딱 그 정도 추위랄까?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분명 몸 속에 히터가 있을 거다.

"어쩔 수 없잖아. 관리국은 언제나 인재 부족이라고."

"못가! 아니 안가! 관리국 인권위원회 불러줘!"

"감히 상관 명령에 불복종하겠다는 거야?! 영창 보내버린다!"

나를 또 다시 그 출장 지옥에 보내려는 저 보라색 머리의 마녀는 나를 이 시공관리국과 인연을 만들어 준 존재다. 예전 임무에서 부상당한 그녀를 구해 준 뒤 청년실업의 피해자였던 나는 그녀의 제의에 멋도 모르고 손을 잡았다가 고생이라는 고생은 죽어라 하고 있다. 게다가 난 현장에서 죽어라 일하는데 이 녀석은 또 언제 승급 시험을 봤는지 지금은 대위까지 됐다. 망할, 혼자만 출세하다니 치사하다.

같은 부대 동료들은 저 마녀가 뭐가 이쁘다고 대위님을 위해서라면 지옥까지 갔다오겠습니다라고 외치는 걸까?

"그래~~. 이제 목숨 살려준 은인을 감옥까지 보내겠다 이거지? 이렇게까지 타락해버린 세상에 절망했다!"

"윽! 대체 그거 언제까지 써먹을 건데!?"

물론 죽을 때까지 써먹을거다. 이런 좋은 것을 왜 포기하냐?
저 마녀를 구해준 일 덕분에 난 그녀와 친구가 됐고 상하 관계가 됐더라도 그녀에게 반말을 하고 있다. 뭐 나이도 비슷하고 저 녀석도 그것에 별 다른 말이 없으니 상관없지 않나? 그렇다고 항상 반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단 둘이 있을 때만 말을 트고 지내니까 말이다. 나도 상식이라는 것은 있다고.

"나도 얼마 전에 출장 갔다온 널 또 보내고 싶지는 않아. 하지만 인원이 없는데 어떡해. 남은 인원은 전부 다 로스트 로기아 탐색 임무 혹은 차원 범죄자 체포 임무로 차원 항해 부대에 배속된 상태란 말이야."

"그럼 적어도 쉴 시간 정도는 줘야 하는거 아니야? 내 몸은 무쇠팔 무쇠다리가 아니라고."

"그래서 이번에는 쉬운 임무야. 자, 일단 보고 결정하라고."

찜찜하기는 하지만 눈앞에 나타난 스크린에 있는 내용을 읽어보니 확실히 어려운 임무는 아니다. 목적지인 387관리 세계는 그리 위험한 곳은 아니거니와 임무 자체는 물건배달 같은 것이니 말이다.

"흠, 그러니까 어떤 물건을 그쪽 사람에게 넘겨주기만 하면 된다는 거네. 확실히 쉽긴 한데."

"그렇지? 그리고 임무 완수를 해도 여유시간이 있으니 좀 놀다와도 상관없어. 여기 있어봤자 또 임무만 늘어날테니까."

이제야 알았다. 387관리 세계는 관광지로도 유명한 곳이어서 휴양 시설도 꽤 잘 되어있는 편이다. 이 녀석이 나에게 이 임무를 맡긴 것은 임무 완수와 동시에 휴양지에서 피로라도 풀고 오라는 것이다. 내가 친구는 잘 뒀어. 뭐? 아까까지 마녀라고 했다고? 내가 언제?

"역시 날 생각해주는 건 너 밖에 없어! 사랑한다, 친구야!"

얼레? 내가 무슨 말을 잘못했나? 왜 이 녀석 얼굴이 갑자기 붉어져? 감기라도 걸린건가?

"아, 아무튼! 임무는 맡는거지?"

"물론! 상관의 명령에 절대복종하는 것이야 말로 부하된 당연한 도리가 아닐까?"

"풋! 어울리지도 않는 소리 하지 말고 임무 맡았으면 얼른 가봐. 물건은 무한 서고의 사서장에게 받으면 될거야. 자, 여기 통행증이야. 예전에는 안그랬는데 요즘은 통행증 없으면 통과시켜주지 않는다고 하더라."

무한 서고라면 각 차원의 책이란 책은 모두 모아두는 어떻게 보면 차원 규모의 도서관이라고 하는 곳이다. 난 책이랑은 별로 안친해서 근처에 가본 적도 없지만 말이다. 사서장이 꽤 젋은 사람으로 알고 있는데. 이름이 유노 스크라이어라고 했던가.

"오케이, 그럼 갔다와서 보자고."

"와서 보고하는 것 잊지 말고."
.
.
케이가 나가자 그녀는 책상위에 놓여진 자신의 명패를 집어들어 보았다.

'본국 무장대 대위 엘리사 프라이데이'

일반 국원부터 시작하여 여기까지 오는데 수많은 난관에 부딪혔었다. 특별한 재능도 없는 그녀가 출세하기 위해 위험한 임무를 맡을 수록 그녀의 입지는 넓어졌고 출세의 길도 빨라졌다. 한 번은 죽을 뻔한 적도 있었지만 다행히 케이의 도움으로 목숨을 부지했다.

'그때부터였나...'

케이가 엘리사를 구해준 뒤 부터 그녀의 마음에 케이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둔탱이는 그녀를 친구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한 때 포기해버릴까도 생각했지만 조금 전과 같이 생각없이 내뱉는 말에 포기를 못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녀는 이런 자신이 바보 같지만 그래도 어쩌랴. 이미 반한 것을. 케이는 과연 알고 있는 걸까? 엘리사가 중대장이 된 이후로 그녀가 그를 위험한 임무에서 빼기 위해 아무 것도 모르는 다른 국원들만 죽어라 고생을 하고 있다는 것을.
.
.
.
"처음 뵙겠습니다. 무한 서고 사서장을 맡고 있는 유노 스크라이어라고 합니다. 성함이 케이씨 맞으시죠?"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샌님같이 생긴 녀석이 무한 서고 사서장을 맡고 있는 녀석이다.
확실히 여자들이 뻑갈만 하다고 생각한다. 젋은 데다가 잘 생겼고 능력도 뛰어나다. 젠장 신이라는 분은 왜 이렇게 불공평하신지 모르겠다. 나 같은 평범한 외모에 평범한 능력자는 정말 세상을 어찌 살라는 건지.

"본국 무장대 소속 케이 중사입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엘리사씨가 믿을 만한 분을 추천해주신다고 하시길래 어떤 분이신가 했습니다."

엘리사가 나를 추천했다는 말에 왠지 모르게 어깨가 으쓱해졌지만 엘리사를 친근하게 부르는 그의 말투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뭐랄까, 친구의 친구는 적이라는 느낌? 이것도 질투라는 건가? 나도 아직 어리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희 대장님과 친분이 있으신가 보군요."

"예, 같이 식사를 한 적도 있고 힘들때 상담도 자주 해주시거든요."

'뭐? 같이 밥을 먹었다고! 이게 나도 모르게 언제 이런 샌님하고 식사를 했지? 나하고는 한 번도 같이 밥먹자고 한 적도 없으면서! 그래, 너도 능력있고 잘생긴 남자가 좋다 이거지?! 역시 여자는 믿을게 못 돼! 담배야, 역시 난 너 밖에 없어.'

엘리사에 대한 묘한 배신감에 치를 떨고 있을 때 유노 스크라이어가 나에게 책 한 권을 건네주었다.

"책 권유 받으러 온 것이 아닌데요. 게다가 전 책 하고는 별로 친하지 않습니다."

"하하, 재밌는 분이시군요. 역시 엘리사씨의 말대로에요."

아까부터 엘리사를 친근하게 부르는 유노 스크라이어에게 펀치 한 방을 먹이고 싶은 욕망이 생겼지만 가까스로 참고 있다. 옛 선인께서 말씀하셨지 않은가. 참을 인이 세개면 살인도 면한다고. 두 번 참았으니 앞으로 한 번만 더 참자. 그 뒤에는 저 웃는 면상에 주먹을 꽂아주리라.

"이 책을 387관리 세계의 담당자 분에게 전해주시는 것이 제가 엘리사씨에게 부탁드린 일입니다. 엘리사씨에게 듣지 않으셨나요?"

"그 물건이라는 것이 이 책이었습니까?"

"예, 원래 그쪽의 책이었는데 우리 쪽에서 보관을 하고 있다가 얼마 전에 있었던 재협약 과정에서 반환 품목에 들어간 물건들 중 하나입니다. 그다지 위험성도 없고 해서 관리국 측에서도 허가했던 거죠. 뭐 내용이 궁금하시면 읽어보셔도 상관은 없습니다."

유노 스크라이어의 말에 나는 책을 펴서 조금씩 읽어보았다. 무슨 책인지는 알고 보호를 하던지 할 것 아닌가. 대충 읽어보면 387관리세계의 미신이나 잡다한 지식 같은 것이 적혀져 있었다. 일반 국원인 내가 봐도 정말 지루한 책이다. 이런 지루한 책을 재협약을 하면서까지 반환을 요구한 것을 보면 그 사람들에게는 중요한 물건일테지만 말이다.

'이건 임무라기보다는 완전 심부름이로군.'

"확실히 인수 받았습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수고하십시오."

"예,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무한 서고에서 나와 387관리 세계에 가기 위해 그곳으로 가는 차원항해함이 도킹되어 있는 곳으로 가던 중 반가운 얼굴이 눈에 띄었다. 육사 108 부대장 나카지마 겐야 육군 소령.
내가 한 때 지상본부에 파견을 나갔을 때 꽤 신세를 진 적이 있었다. 뭐랄까? 영관급이면서도 권위 의식은 없는, 편하고 좋은 분이라고 해야겠지. 그런데 저 분이 이곳은 왠 일이지?

"나카지마 소령님!"

나카지마 소령님도 내 목소리를 들은 듯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시더니 반가운 듯 얼굴을 활짝 피며 다가오셨다. 응? 뒤에 따라오는 저 제복 입은 여자아이는 분명히..... 누구더라?

"아니! 이게 누구야! 자네 케이 아닌가. 정말 오랜만이로군."

나에게 다가온 나카지마 소령님은 손을 크게 흔들며 내 어깨를 치셨다. 정말 변하지 않으셨군.

"자네가 본국으로 돌아간 뒤로 약 2년 만인가? 그래,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본국무장대 국원이 하는 일이야 뻔하죠. 이 세계 저 세계 돌아다니며 로스트 로기아 탐색이나 분쟁 해결 지원..... 출장 지옥이었습니다."

"하하하! 그래, 그 동안 고생이 많았군. 아참, 내 정신 좀 보게. 자, 서로 인사 하게. 자네에게도 반가운 얼굴 일테지?"

나카지마 소령님과 같이 있던 여자아이가 내 앞으로 한발짝 다가와 경례를 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중사님."

오랜만이라며 경례하는 여자아이에게 나는 당황했다. 왜냐? 정말 기억이 안나거든.
대체 넌 누구냐?! 누군데 날 15년 동안 가둬두고 군만두만... 아니, 이게 아니지.

"저기...."

"예, 말씀하세요, 중사님."

해맑게 웃으며 친근하게 말해주는 그 아이를 보니 죄책감이 물 밀듯이 밀려온다.
누구냐고 묻는다면 분명 마음이 상하겠지? 상처 받겠지? 아아... 내 인생 28년에 이렇게까지 당황스러운 것은 처음이다. 어떻게 하면 상처를 받게 하지 않을까 고민하고 있을 때 내 눈에 그녀의 왼쪽 가슴쪽에 달린 명찰이 들어왔다.

'나카지마.... 긴.... 긴가!?'

"설마 너 긴가냐?"

"예, 2년 만이죠.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이제야 생각났다. 나카지마 소령님의 두 딸 중 첫째로 어린 나이면서 꽤 어른스럽고 다부졌던 녀석이었다. 소령님의 사모님께서 타계하신 뒤로 국원으로서 일은 물론 나카지마 가의 집안 일까지 도맡아서 하던. 불과 2년 사이에 몰라보게 성장해서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할 정도다.

"이제 갇 하사가 되었다네. 우리 육사 108부대의 조사관 역할도 하고 있지."

소령님의 말에 깜짝 놀랐다. 내가 봤을 때만해도 일등병이었는데. 2년 만에 하사가 됐다니.
보통 노력이 아니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잠깐? 그럼 나보다 12살이나 어린 녀석이 바로 내 밑이란 말이다. 젠장! 난 그동안 대체 뭘 한거냐! 이러다가는 긴가가 나보다 위로 올라가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설마 랭크까지 나보다 높게 된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섰다. 그것마저 따라잡혔다면 어른으로서의 위엄성에 큰 지장이 생길 것 같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긴가에게 물어봤다.

"종합 마도사 A랭크입니다."

'휴~ 다행이군. 내가 AA+랭크니 아직은 여유가 있구나.'

마도사 랭크는 그렇게 쉽게 올라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직 두 계단 정도는 여유가 있었다. 물론 나도 AA+랭크가 된 것은 얼마 안됐지만 말이다.

"그러고보니 케이, 자네는 2년 전까지는 A+랭크였었지? 그래, 실력은 얼마나 늘었나? 설마 놀고 먹지는 않았겠지?"

"놀고 먹다뇨!? 아까 일에 치여 살았다고 말씀 드렸잖습니까. 후우~ 뭐 그 덕분에 실전 경험도 많이 쌓았고 지금 현재는 AA+랭크가 됐습니다."

"오! 실력이 꽤 늘었구만. 그런데 그 정도 랭크인데도 아직도 중사라니....역시 그 소문이 사실이었던 건가?"

저 말을 들으니 나카지마 소령님도 어디선가 내 소문을 들은 것이 분명했다. 이 몸의 소문이 육군까지 퍼지다니, 이거 황송해서 어떻하나? 기뻐서 춤이라도 추고 싶다.

보통 일반적으로 각 대의 대장이 A랭크인 것을 감안하면 확실히 AA+랭크에 중사라면 맞지 않는 계급이다. 내 랭크에 비해 직위가 낮은 것은 1년 전에 있었던 한 사건 때문이다.
그 사건 이후로 내게 내려진 죄명은 상관 폭행, 현장에서의 명령 불복종, 근무지 무단 이탈이었다. 결국 그 뒤로 무장대의 문제아, 상관 킬러 등 여러 별명과 함께 부하로 두고 싶지 않은 국원 1위에 당당히 뽑혔었다. 그 뒤로 내 출세 길은 꽉 막힌 것이다.

물론 엘리사의 밑으로 들어간 뒤로는 사고 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엘리사는 내 친구인데다가 무엇보다 불합리한 명령따윈 안내리니까. 아, 정말 생각하고 싶지 않은 기억들이다.

"흠, 그 소문이 사실이라면 자네에게도 잘못은 있지만 그렇다고 AA+랭크의 마도사를 고작 그 자리에 앉혀놓고 있는 것은 확실히 인력낭비로군. 자네 정도의 능력을 가진 자를 본국무장대에 두기에도 조금 아깝고."

"전직 본국무장대 소속의 마도사가 다른 곳에서 사고를 치면 본국의 명예까지 실추된다는 걸 알고 있는 거겠죠. 언제나 윗쪽은 자신들의 명예가 실추되는 것을 굉장히 꺼려하니까요. 짜르기에는 인재부족의 시공관리국으로서는 아까울 수 밖에 없고 그렇다고 다른 곳에 보내기에는 불안하고 말이죠."

"결국 내세운 방법이라는 것이 고작 자신들의 영역에 가둬두는 거로군. 하여간 머리 안돌아가는 양반들이야."

역시 나카지마 소령님은 뭔가 아시는 분이시다. 윗대가리들 한테 사람 다루는 것 좀 이 분한테 배우라고 하고 싶다. 그러고보니 내가 너무 시간을 잡아먹었다는 것을 알았다. 소령님도 관광이나 하시려고 본국까지 오신 것은 아닐텐데 말이다.

"너무 오랜 만에 만나는 거라 저도 모르게 시간을 너무 잡아먹었군요. 그런데 소령님께서는 무슨 일로 본국까지 오셨나요?"

"아, 그다지 별 일은 아닐세. 사람 한 명 만나려고 온건데 마침 자네를 만난 거지."

사람 한 명 만나려고 육군 본부에서 본국까지 오신거라고? 누군지는 몰라도 참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은 알겠다.

"시간이 괜찮다면 안내를 좀 부탁해도 되겠나? 우리 보다야 본국에서 지내는 자네가 이곳의 지리는 더 잘 알테니까 말일세."

"물론이죠. 그런데 누구를 만나시려고요?"

"엘리사 프라이데이 대위인데. 그러고보니 자네 상관이기도 하겠군."

소령님의 입에서 나온 이름은 너무도 익숙한 이름이다. 나를 출장지옥으로 보내며, 치사하게 혼자만 출세하고 이제는 내 직속 상관인 그 마녀의 이름이 소령님의 입에서 나오니 새삼 놀랍다고 해야하나. 뭐 어찌됐던 간에 소령님의 부탁대로 나는 두 사람을 엘리사의 집무실로 안내했다. 분명 문을 열고 들어가면 엘리사가 '아직까지 안가고 뭐하러 또 왔어!'라고 잔소리부터 하겠지.

집무실 문을 열자 엘리사는 나를 보고는 인상을 찡그리며.

"아직까지 안가고 뭐하러 또 왔어!"

빙고~ 역시 사람은 오래 겪어봐야 한다니까. 이제는 행동패턴이 뻔히 보이는구나, 엘리사.
엘리사는 나를 타박하면서 내 뒤에 있던 나카지마 소령님과 긴가를 보자 표정을 재빨리 바꾸며 두 사람을 자리로 안내했고 나에게는 축객령을 내렸다. 그래, 간다, 가! 가면 될거 아냐?!

by 라돌이 | 2009/08/31 02:08 | ㄴ장편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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